📘 『운수 좋은 날』
📝 “오늘 운수 좋은 날이오.”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은 1924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도시 서민의 고단한 삶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김 첨지는 병든 아내를 집에 두고 비 오는 아침 거리로 나선다. 인력거꾼으로서 하루라도 일을 쉬면 가족의 생계가 위태롭기에, 그는 아내의 상태가 위중한 것을 알면서도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비가 오면 택시가 드물어 인력거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김 첨지는 연달아 손님을 태우며 평소보다 많은 수입을 얻게 된다. 그는 속으로 되뇐다. "오늘은 운수가 좋다."
그는 거리에서 다양한 손님을 태운다. 술 취한 손님, 고급 양복을 입은 신사, 짐이 많은 여성까지. 김 첨지는 비에 젖은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거리를 달린다. 손님이 많은 만큼 일은 고되고, 마음 한켠에는 아내에 대한 걱정이 계속 떠오르지만, 그는 그것을 감정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오늘 운수가 좋다”는 말을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설렁탕 두 그릇과 술 한 병을 산다. 이 모든 것은 아내에게 건넬 따뜻한 한 끼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그는, 방 안에서 조용히 누워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그는 아내에게 말을 걸고, 설렁탕 뚜껑을 열지만,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다.
이 작품은 김 첨지의 감정이나 내면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처한 환경과 그날의 상황, 그리고 마지막 침묵의 장면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독자는 그 묘사의 절제 속에서 더 큰 슬픔과 현실의 비극을 느낄 수 있다.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면,
나는 마음에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이 든다.
그 이야기는 인간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 하루는 아주 빠르게 흘러갔고, 슬픈 일이 일어났고, 누군가는 밥을 샀다. 그러고는 하루가 저물었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간다. 너무 비극적으로도, 너무 후회스럽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냥 그런 하루였고, 그 하루는 어떤 의미에선 오늘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날은 기쁘고, 어느 날은 괜히 웃고,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는데 그저 흘러간다.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감정 속에서, 그저 지나치고 만다.
나는 김 첨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가 너무 익숙해서, 잊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글은 가끔 별안간 생각이 난다. 마치 오래전 기억처럼, 날씨처럼, 문득.
그날의 기쁨은 어설펐고, 하루는 즐겁지만 담담했고, 죽음은 너무 찰나이었기에 더 깊게 남는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첨지는 과하지 않고, 그렇다고 덜하지도 않다.
그건 그냥 그런 하루였다. 그날은 그랬다.
💬 더보기:
글속에 감정과 심리가 없는데, 날씨와 사건들이 감정을 살아내게 해준다. 왠지 부연이 있었던 것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감정 절제가 이렇게 큰 여백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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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운수좋은날 #현진건 #한국단편소설 #김첨지 #감정독해 #삶의굴레 #하루의무게 #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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